네이버 ‘지식인(iN)’에 ‘녹야(綠野)’라는 아이디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수많은 답변을 남기며 ‘지식인 할아버지’로 불린 조광현 선생이 3월 27일 오후 10시께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유족이 29일 전했습니다. 향년 88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치과 외에도 지혜로운 답변으로 인기
고인은 1935년 경기 김포에서 태어나 경복고,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1962∼1995년 서울에서 치과를 운영했습니다.
환갑 즈음 치과를 그만두고 2002년께 인터넷을 시작한 고인이 남긴 지식인 답변은 모두 5만3839건이며 그에게 도움을 받은 지식인 질문자도 4만7630명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치아 유지·관리 분야 외에도 생활 속 재치가 보이는 답변들로 주목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산타 할아버지 나이는 몇 살인가요?”라는 질문에 “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라고 답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고인은 전공인 치아 관련 지식이나 초등학교 입학 전에 4천자를 외웠다는 한문 실력 등 풍부한 교양을 바탕으로 여유와 위트가 넘치고, 인생의 지혜가 담긴 답변을 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고령에도 활동을 꾸준히 이어간 그는 네이버 지식iN에서 소문난 상담가였습니다. 누리꾼들은 ‘지식인 할아버지’ ‘녹야(푸른 들판) 할아버지’ 등으로 부르며 답변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성실한 답변으로 유명한 그의 소식이 뜸해질 때는 건강을 걱정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2017년 2월과 2018년 10월 두 차례 시력 약화로 지식인 활동 중단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지만 아쉬워하는 팬들의 요청으로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습니다.
진정한 지식인, “모르는 질문 공부해서 답변”
그는 네이버 지식인 등급인 ‘하수-평민-시민-초수-중수-고수-영웅-지존-초인-식물신-바람신-물신-달신-별신-태양신-은하신-우주신-수호신-절대신’ 지식인 등급 중 고인은 두 번째로 높은 ‘수호신’이었습니다.
2015년까지 최고 등급인 ‘태양신’ 등급이었던 그는 ‘태양신 할아버지’라는 별칭으로도 불렸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모르는 질문을 받으면 공부해서 답변한다고 답했는데요. “이 나이가 돼도 모르는 건 알고 싶죠. 내 공부하려고 사전도 찾아보고요. 궁금해서 스스로 알아본 건 안 잊어먹어요. 지식은 이렇게 늘려왔습니다. 내가 모르는 걸 알고 있다면 초등학생이어도 은인이죠. 내 선배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습니다.
네이버, 애도 뜻 전해
3월 29일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추모의 뜻을 보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은 “세상 다양한 것들에 지식이 많고, 호기심이 많고, 다정했던 분”이라고 고인을 회고했는데요.
가족들은 조옹의 숨은 조력자였습니다. PC나 휴대폰이 느려지는 등 이상이 없도록 슬하의 2남1녀가 늘 살폈다고 합니다. 손녀 조윤영씨(34)는 “지식인 등급이 올라갈 때마다 뿌듯해 하곤 하셨다”며 “할아버지에게 지식인은 친구와 얘기하는 듯한 소통 창구였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조옹의 작고 소식에 네이버도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네이버 지식iN 서비스는 이날 “영원한 지식iN 할아버지 녹야님의 별세를 애도한다”는 추모글을 게재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표자명으로 근조 화환을 발송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던 문답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은 세뱃돈이나 한 달 용돈이 얼마 정도나 될까요?”
→ “그런 생각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꾸 살기가 힘들어지고 싫어집니다”
“할아버지, 제가 요즘 공부도 재미없고 지루한데 조언 좀 해주세요”
→“나는 공부가 재미없고 지루한 사람한테는 할 얘기가 없습니다. 내 얘기도 지루할 테니까요.”